모든 것은 이미 움직인다

베를린 겨울. 오후 4시면 해가 진다. 낮이라 해도 온통 잿빛이다. 창밖 나무는 물 먹인 숯처럼 검고 진하게 서 있다. 잔 가지들만 복잡한 사정을 드러내며 얽혀있다. 그 사이로 하늘이 들어오고 노을이 들어온다. 

해를 거듭하며 겨울나는 법을 익혀 간다. 숲을 걷고 나면 일주일, 친구들을 초대해 따뜻한 음식을 나누고 난 뒤엔 한달쯤 버틸 힘을 얻는다. 온기를 충전한다. 

이번 동지에는 팥죽을 쒀야겠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밤새도록 시를 읽고 춤을 춰야지. 긴 밤을 붉게 지피고 싶다.

*

“나의 새 집으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의 대부분은 이 집에서 쓰여졌다.”

<몸을 찾는 해 A Year in Search of Body> 키키의 전시 소식을 처음 접한 건 인스타그램에서였다. 초대글 옆으로 정갈한 돌탑과 새알같아 보이는 조약돌 이미지가 함께 놓여 있었다. 

집으로 관객을 부르는 일. 기관이 아니라 거실을 전시공간으로 삼는 일. 사적 영역을 공적 장소로 전환하는 일.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일. 

생각만 해오던 일을 누군가 벌이고 있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미뤄둔 일에 대한 자책과 부러움도 있었지만 기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개된 메일 주소로 연락해 방문 시간을 정하고 집 주소를 전해 받았다. 동지를 하루 앞둔 12월 20일 오후 2시 몬드가 동행했다.  

독일에서 생활한지 만 10년이라고 했다. 거실 한쪽엔 커다란 소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맞은 편 벽을 타고 책들이 한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제목이 벽면을 향하고 있어 바랜 정도가 다른 종이들의 탑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아닌지 경계는 불명확했다.   

주의해서 걸었다. 방 한가운데 쌓인 돌의 형상이 무너지지 않게. 똬리를 튼 생물 같기도, 수묵화로 그린 풍경 같기도 한, 초대 포스팅에서 본 돌탑이었다. 조심스러워 하는 나와 달리 몬드는 그 앞에 앉아 “이건 무슨 소재인가요?” 천진하게 물었다. 그 질문에 키키는 맨 위에 있는 돌을 성큼 들어올렸다. 

“점토로 만든 거에요.” 답하며, 나머지 돌들도 하나씩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크고 작은 돌들이 열 개 쯤, 공든 탑이 가볍게 해체되었다. 꽤 놀라운 변신이었다.

원상 복귀 시킬 수 있을까,  작가는 이미 최고의 조합과 그 순서를 알고 있을거야 싶었다가 처음부터 순서따위 없었구나, 정해진 형태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같이 무질서한 사람에게도 질서의 강박이 작동한다는 사실에 흠칫하며. 

새로운 발길이 닿을 때마다 이 돌탑은 매번 다른 형상으로 쌓이고 무너졌을게다. 그 부드러운 덩어리의 몸들이 스러졌다 일어나는 풍경을 타임랩스 영상처럼 그려봤다. 

“차 한잔 드릴까요?”라는 물음에, “괜찮다면 커피 한잔 주세요.”라고 답했다. 

키키는 주방으로 가기 전 “작품과 함께 보시면 좋을 거예요.”라며 작은 책자를 건넸다. 초대글, 작품 이미지, 일기, 시 같은 것들이 엮여 있었다. 키키는 그것을 논문이라 불렀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동안 우리는 집 구경을 하듯 작품을 보고, 공간과 공명하면서도 독립적인 논문을 읽었다. 

최소한의 살림살이에 바닥과 벽 가까이 놓인 작품들 덕에 공간에는 넉넉한 여백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퉁이에서 조약돌을 발견했다. 돌아가신 키키의 할머니가 서랍에 모셔뒀던 돌이라고 책자가 말해줬다. 하얀 돌 표면 위 패인 구멍 사이로 숨이 깃든 것 같았다.  돌의 이주, 돌의 대물림이라고 생각하니 따뜻한 새알처럼 보였던 이유를 알겠다. 주먹쥐듯 한 손에 감기는 돌의 감촉이 좋았다. 

논문에 실린 글 상당은 이미 인스타에서 본 기록이었다. 기시감 속에 온라인 공간의 독특한 친밀감을 떠올렸다. 

그렇지만 그곳에서도 키키는 결코 하나의 고정된 얼굴로 환원되지 않는다.

예술기관에서 일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몇해에 걸쳐 ‘몸과 기관’이라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 온라인 사진 속 키키는 피부를 초록색과 보라색으로 칠하고, 가발을 뒤집어 쓴 채 유쾌하고 도발적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요가 자세로 앉아 ‘inhale reality, exhale racism’하고 주문한다. 그렇게 그는 아시안 여성으로서 자신의 신체를 구조 속에 위치시키며, 몸과 기관의 역학을 드러내고 또 비튼다. 하지만 정작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재기있게 폭로하는 작가의 이면에 어떻게 정지된 순간의 울림과 잔향을 감각하는 시적 심상을 동시에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논문은 전한다. 일과를 빼곡하게 계획하고 빈틈없이 시간을 쪼개가며 생산(Production)하고 보여지는 일(Exhibition)에 전념하던 키키가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번아웃 상태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그가 아프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리드형 스케줄러를 창고에 넣는 일이었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모습은 그 무너짐 이후 저항으로서의 멈춤이자 잃어버린 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적 실천인 것이다. 

*

단 한 명을 위한 전시. 단 한 명을 위한 공연 The River I 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억을 먼저 건드린 건 키키였다. 

“그때 슈프레 강 위에서 있었던 그 퍼포먼스는 어땠나요?” 

어떻게 알았지 했다가, 나도 그날의 기록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정확히는 한 시간대에 한명 또는 한쌍이 초대되는 전시이자 공연이다. 

그때 나는 함께 춤 공부하는 가비에게 동행을 청했다. 코스타리카에서 온 가비는 물을 주제로 한 석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가 <물의 몸들: 소마틱 실천에서 미시정치적 저항의 가능성>이라는 주제를 발표했을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역량을 넘어서거나 거스르려 하지 않고, 어느 자리로든 흘러가고 또 포용하는 가비는 그 자체로 물의 형상과 닮아 있었다. 물과 관련한 작품을 마주할때마다 어김없이 가비를 떠올리는 이유다.  

학부에서 춤과 심리학을 공부한 가비는 신체와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몸의 감각과 지각, 경험을 통해 인식하고 조율하는 소마틱 실천을 기반으로 춤을 춘다. 춤을 추는 가비의 얼굴은 깊은 우물처럼 고요하다. 시선은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동시에 아우른다. 스스로 도취된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몸이 간직해 온 복수의 기억을 불러내며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의 현주소를 묻는 몸짓이다. 가비가 연구하는 유동성의 춤은 진공 상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물의 오염과 단절, 그리고 물 접근성의 불평등을 초래한 식민주의와 자본주의를 심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몸 70% 이상이 물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몸은 자연의 일부이자 복합적인 시스템인 자연 그 자체다. 몸의 조수에 귀를 기울이며 추는 춤은 손상된 것들과의 연결이자, 그 흐름에 저항하는 애도의 몸짓이며, 동시에 사회생태적 회복을 기약하는 돌봄의 실천이 된다.    

“아무것도 없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해질 무렵 퍼포머가 우리를 배에 태워 강 한가운데로 데려갔어요. 그리고 한시간 동안 그 배위에 있다 온 게 다예요. 그런데도 정말 좋았어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용돌이쳤던 한해 중 가장 고요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게 올 한해 중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한번 더 나직이 말했다. 

듣고 있던 키키도 그런 순간이 있다고 했다. “제게 말했어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장소를 떠올리라고요. 하나, 둘, 셋! 하면 그곳으로 이동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문을 닫고 나오라고 했어요.” 다만, 그것이 상담에서 들은 이야기였는지, 워크숍이었는지, 아니면 사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제가 베를린에 오기 전 라이프치히에서 살았는데요. 거기엔 호수가 많아요. 나체로 수영하던 동독문화가 남아 있어서인지 다들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고 수영을 해요. 이제 저도 여름이면 친구들과 우리만의 호수를 찾는데요. 맨 몸으로 물에 떠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좋더라고요. 가장 행복했던 장소를 꼽으라면 저에게는 그게 바로 그 호수예요.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그 순간이요.”

키키가 말했다.

*

“리베상화. 나는 지금 샤논 쿠니의 인터뷰를 듣고 있어. 네 생각을 해. 그리고 슈프레 강의 공연을 떠올려. 나의 대모이기도 한 이모가 어제 죽었어. 나는 지금 애도하며 슬퍼하고 있어. 너와 배 위에서 함께 한 시간은 정말 선물 같았어. 그 물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날의 선셋, 그리고 작별의 순간들을 생각해.”

가비의 문자다. 

샤논 쿠니는 신체의 유동성을 탐구하는 안무가인데, 가비는 그의 안무를 논문 사례로 삼는다. 가비가 청한 인터뷰 자리에 나도 함께 있었다. 인터뷰 말미 샤논은 ‘물이 흐르는 것은 결국 고요한 멈춤(stillness)을 위한 것이 아닐까?’라고 했는데 나는 흔들리는 물을 볼 때마다 그 역설적인 말을 떠올리곤 한다.

The River I의 관객이 된 것은 해가 긴 유월의 어느날이었다. 밤 9시 강 기슭에서 만난 퍼포머는 자신을 진지라고 소개하며 헤드셋을 건넸다. 진지는 우리 둘을 나무 배에 태우고 전령처럼 노를 저어 강 한가운데로 데려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샤논 쿠니 역시 이 공연에서 노를 젓는 퍼포머 중 한명으로 참여했다. 

헤드셋에서는 어느 강의 이야기, 노래 소리, 허밍 그리고 침묵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시간 동안 강의 노래를 들었다.

하지만 배 위에 누워 바라본 것은 강물이 아니라 출렁이는 하늘이었다. 그 하늘 위로 새들이 물고기떼처럼 유영하고 있었다. 강 한가운데서 올려다 본 세상은 온통 움직임으로, 빛으로, 소리로, 생으로 가득했다. 우리를 태운 배가 요람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기침대를 가져본 기억이 없는 나는 요람 대신 태어난 동네와 냇가, 그리고 나를 둘러싼 언니동생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집을 나서기 전 화상으로 만났던 그 얼굴들을. 

*

“리베가비, 깊은 조의를 표해. 나도 그날을 자주 떠올려.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 순간이었는지. 그날 이후로도 내 여동생은 여전히 아파, 그리고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어. 인생은 기쁨으로 가득하고 동시에 슬픔으로 가득해. 다만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할 뿐이야.”

가비에게 답했다. 

동생의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이 딱 그 무렵이었다. 하지를 앞두고 빛으로 초록으로 축제가 한창이던 그때, 동생은 무너져 있었다. 언니집으로 자매들이 모였다. 멀리 있는 나는 영상으로 함께 운동할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들의 작은 의식이 시작됐다. 낮 12시가 되면 한국의 저녁 풍경과 연결된다. 엄마와 네자매가 작은 화면 속으로 모여든다. 함께 호흡하고 요가를 한다. 마무리를 하려 하면, 언니와 셋째가 일어나 막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몸짓에 다같이 자지러지게 웃는다.  언니네 집을 나서며 동생이 문자를 남겼다. 

“가끔 어릴때처럼 다같이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큰언니네 있으면서 소원을 이룬 것 같아. 긴 여정이 끝났으니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이야. 독일식구들도 좋은 하루 보내” 

동생은 제부의 부축 속에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섬머타임이 끝나고 어둠이 빠르게 내리듯, 확진 이후 병의 진행은 급격했다. 한시간씩 이어지던 통화는 이제 십분을 넘기지 않는다. 앉아서든 누워서든 함께 호흡한다. 동생네 아파트 방송소리를 들으며, 언니네 설거지 물 소리를 들으며, 운이 좋으면 조카들 목소리를 들어가며 함께 숨을 마시고 숨을 내쉰다. 그저 함께 있는 시간, 우리는 서로에게 접속한다.

동생이 아파, 그 말은 쉽지 않다. 나의 침묵이 동생을 고통 속에 가두는 것 같아 애가 탔지만, 그 가벼운 발화에 자책하게 될 것이 두려워 다시 입을 다물고 만다. 그 말을 여기 내려놓는 이유는 그날 배 위에서 마주한 모든 사물 위에 어려 있던 언니동생들의 얼굴과 슬픔 가운데서도 넘쳐나는 생의 기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키키의 논문에서 발견한 아래의 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움직이지 않는 움직임을 읽는 눈동자와, 미세한 진동과 떨림을 알아채는 그 손끝에 기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관객이 되는 일은 태세를 갖추는 일이다. 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응시하고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녀의 집에 머물던 두시간 남짓 거실의 오후 풍경을 바라본다. 아래층 터키 빵집에 앉은 이웃들의 소리를 듣는다. 창밖 나무의 흔들림과 둥지를 튼 새들의 날개 짓을 본다. 전시의 일부가 되었다, 집의 일부가 된다. 

그 사이 말들이 오가고 기억이 섞인다. 몬드는 키키의 글들에서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곳을 떠나는 동안 저곳에 도착하고, 저곳을 떠나는 동안 이곳에 도착하던 비행기 안에서의 상태를, 창가 가까이 찾아오는 새들과의 교감을, 키키를 멈춰세우게 한 어깨의 통증까지… 모두 자신의 이야기처럼 읽었다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논문책자에 사인을 청했다. 키키는 바닥에 앉아 두 무릎을 한쪽으로 포갠 뒤 연필을 쥐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단정한 돌탑같아 보였다. 

“사주를 보니 올해 내가 내 몸을 되찾는다던데. 알쏭달쏭해서 좋은 그 말을 종종 되뇌어 본다. 요즘은 강원도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굽이굽이 강물을 따라 달리고, 매일 꾸준히 마당에 쌓이는 낙엽을 쓸고…”  몸을 찾는 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던 키키의 인스타 글을 떠올린다. 강원도의 햇살이, 굽이치는 물길이, 단단한 조약돌이 한번에 고개를 내미는 것 같았다. 바닥에 누운 돌탑에서도 풍경처럼 숨을 쉬고 있는 키키의 몸을 나도 발견한다.

“그런데 왜 닫아야 하죠?” 호수에서 문을 닫고 오는 게 중요해요, 라는 말에 궁금했던 질문은 한참이 지나서야 건넸다. “우리가 있는 곳은 지금, 여기니까요.” 키키가 답했다. 

시를 짓던 날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날 수업은 티어가르텐에서 이뤄졌어요. 각자 30분동안 숲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연습을 했어요. 그 글은 바라보기를 하고 난 뒤 돌아와서 쓴 거예요.”

이번에도 나를 건드린 말은 돌아온다는 행위였다.

여는 만큼 중요한 것은 닫고 나오는 일이다. 닫아야만 보이는 길도 있다. 

졸업. 

<몸을 찾는 해>는 키키의 졸업전이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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