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현 안무가 인터뷰-여기서 저기를 상상하며

6월 초 베를린은 녹음으로 가득하다. 자전거를 타고 집앞 호수공원으로 나가 황수현 안무가를 기다린다. 그녀는 4월(2023년)에 있었던 공연 <카베에>를 마치고 여행중이다. 5월에 열리는 브뤼셀 쿤스텐 페스티벌의 관객이 되었다 파리를 거쳐 마지막 여행지인 베를린에 도착했다. 집채만한 나무 밑을 지나자 정수리 위로 물방울이 기분좋게 떨어진다. 키 큰 나무들이 양분을 흡수하고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기공을 열었다 닫는 증산작용이다. 생동하는 물질, 포러스(porous:구멍이 많은)한 몸에 대해 말하기 좋은 계절이다.

몇해 전 서울에서 처음 만나던 날, 황수현 안무가는 먼저 베를린 안부를 물었다. 친구가 있어 베를린에 머문 적이 있다고. 느지막이 일어나 뭔가 움직여 보려 하면 오후 4시도 되기 전에 해가 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죄책감과 함께 친구를 맞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한 계절이 끝나듯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때 운이 좋게 지금의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집이 주는 안정감으로 다시 안무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예술가의 작업 조건을 전셋집 덕으로 돌리다니. 나는 그녀가 살피는 세계가 어디쯤인지 알것 같아 금새 같은 편을 만난 것만 같았다. 게다가 베를린 겨울 해질 무렵의 죄책감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녀의 인터뷰를 볼때 마다 무용수에서 안무가로의 전환이 등장하는 이유는 아마도 한 세계가 닫히고 열리는 시간을 통과해 본 경험의 강도 때문이리라. 눈부신 초록도 겨우내 잿빛 하늘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만끽할 수 있는 기쁨인 것처럼, 그 시간을 통과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세계가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바이센제(Weissensee) 호수공원 야외카페에 앉았다. 해변에서나 어울릴법한 파라솔과 간이의자를 모래밭 사이에 놓고 바로 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수변공간이다. 익숙하고도 낯선 장소가 주는 분위기에 기대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스토리도 없는 춤에 대해, 언어를 넘어서는 몸의 정동에 대해, 하물며 보지 않은 공연에 대해 말하기는 과연 가능할까. 이론과 실재, 개념과 춤의 만남이 중첩되고 포개지길 기대했지만 사실 우리의 대화는 자주 어긋나고 부딪쳤다. 그러나 대화의 끝에서 나는 흔들리고 말았는데, 그건 조율하는 무용수들의 몸처럼, 자세를 고쳐앉는 관객의 태도처럼, 대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미세하게 조정되었기 때문이다.

<카베에>공연이 열리는 동안 베를린에서 SNS를 통해 서울의 공연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했다. 현장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연과 가까이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황수현 안무가는 공연이 끝난 뒤 극장을 벗어난 관객에게 관련 영상을 전달해 극장에서의 경험을 확장하도록 장치한 <저장된 실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때 생각의 끝이 죽음까지 갔어요. 그렇다고 실제로 죽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한 건 아니었죠. 문득 ‘어차피 지금 죽을 거 아니잖아’ 싶더라고요. 그러고 나니까 ‘그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이 들었어요. 부정적이라 여기던 것 끝에서 긍정의 방식을 찾는 작업이 시작된 거죠. 그리고 숙제처럼 가지고 있던 죽음에 대한 질문을 작업에 녹여내기로 했어요. 그게 2014년, 제가 처음으로 퍼포머에서 빠지고 무용수들과 작업한 <저장된 실제>였어요. 개인적으로 두려워하는 것들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지요. 그랬더니 주변에서도 제 안무적 질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감각과 직관을 믿는 나름의 확신이 생겼어요. 이후 감정을 다룬 작업들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다음부터는 작품들이 저를 키우는 느낌이에요. 질문하게 하고, 다음을 구상하게 하고, 제 태도를 바꾸게도 하고요.”

– 동일한 제목의 필름이 2022년 전주영화제에 초청되었죠?

“맞아요. 공연은 서울무용센터 세개의 스튜디오를 무대로 했는데요. 세명의 무용수들이 각자의 방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세 그룹의 관객들이 동선을 달리해 로테이션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공연을 보고 돌아간 관객들에게 핸드폰이나 메일로 관련 영상을 보냈어요. 그럼 관객은 개인의 공간에서 영상을 보면서 다시 극장의 경험을 소환하게 되는거죠. 코로나때 활발하게 제기됐던 영상매체를 통한 극장의 확장성에 대한 질문을 이때 이미 던졌던 셈이에요. 그 영상이 이후에 영화제에 초청된 거고요. 하지만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지점은 실제 감각에 기반한 확장된 상상이지, 순수한 상상은 아니었어요.”

– 저처럼 영상이나 상상을 통해 친밀함을 느꼈다는 피드백보다, 극장 현장에서의 관객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인 거죠?(웃음)

“극장은 만남의 장소잖아요. 현장의 공기, 무드, 에너지같이 관객의 몸이 포함된 것이 공연이에요. 관객이 없는걸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보는 에너지가 얼마나 센데요. 퍼포머의 바디와 관객의 바디는 하는 일이 달라요. 에너지도 다르고요. 저는 그것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만나고 부딪치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있어요.”

– 서울에서 만났을때도 ‘공연에서 마지막까지 남는게 있다면 그건 관객이다’라고 말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도 공연을 보러 가는 일의 문턱이 높아지니까 다음 작업에서는 큰 극장에서 누구나 올 수 있는 대규모의 공연 작업을 해야겠다고 했던 것도 기억나고요. 

“제가 그전에는 소수 퍼포머와 소수 관객으로 특별한 구조를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잖아요. <음—> 작업이 끝나고 들었던 의문이 있었어요. 2020년 옵신 페스티벌에서였는데 1분 만에 티켓이 매진된 거예요. 기쁘긴 했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지인들을 포함해서 너무 많은 사람이 공연을 보지 못했거든요. 저는 더 보여주고 싶은데! 옵신이라는 데가 아는 사람만 아는 페스티벌이고, 저도 아는 사람만 아는 안무가인데 이렇게 빨리 표가 없어졌다는 게 일종의 특권 같은 상황이 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음 공연에서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의뢰가 왔어요.”

– 함께 모이는 것을 제약하는 코로나가 오히려 다수의 몸들이 모이는 장소로서의 극장을 구상하게 한 거네요. 대규모의 퍼포머와 대극장에서의 공연으로요.

“극장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춤이라는 것이 왜 ‘춤공연’이라는 매체로 존재해야 하는가, 그런 질문을 계속 갖고 있었어요. 코로나가 가중 시키기는 했죠. 코로나 때는 만남으로서의 극장이 사실상 불가해졌잖아요. 특히 한국에서는 영상과 기술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졌고요. 그렇다면 미래에 극장은 어떤 형태와 역할로 존재하게 될까, 과거의 향수로 남게 될까, 아니면 주제적인 면을 전달하는 담론적 장소로만 기능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했죠. 춤은 어디에나 있지만 이렇게 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춤공연’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도 있고요. 저는 극장이 관람의 장소로 끝나는게 아니라 공동을 경험하는 실천의 장소가 됐으면 해요. 시공간이 차단되는 극장의 폐쇄성을 어떻게 하면 일시적이나마 공동 경험의 장소로 작동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 지원하는 기관의 성격이나 규모, 예산 범위 등에 따라 작업의 성격도 달라질 것 같아요. 국립현대무용단의 초대를 받고 염두해 둔 것이나 기존 방식과 다르게 접근한 부분이 있었나요?

“‘국립이라는 곳에서 안무가가 어떤 일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국립이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개입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고요. 많은 이들이 넘나드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주제적으로는 공동의 감각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는데요. 경험이 다르면 상징이나 의미도 달라지잖아요. 공통의 경험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공감의 영역이 줄어든다는 걸 뜻하고요. 세대간 단절 뿐 아니라, 수평적 단절도 마찬가지고요. 무용계에서는 소위 움직임 중심의 ‘댄시댄스’와 ‘컨셉추얼한 개념댄스’ 사이에도 분리가 있어요. 우리가 그런 구분없이 함께 좋은 걸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면, 무용 생태계에도 어떤 변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개인인 제가 그걸 한다면 ‘황수현이 뭔데!’ 라고 할 수 있지만, 국립의 힘을 빌리면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지금 생각해도 지원금의 규모와 상관없이 국립이 아니었다면 이런 시도를 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 <카베에>라는 공연 제목의 의미와 만들어진 과정이 궁금해요.

“사실 국립현대무용단과 극장 쿼드에서 비슷한 시기 의뢰를 받았어요. <카베에>와 <Zzz>를 같이 준비하게 됐어요. 한쪽으로는 굉장히 많은 무용수들의 몸을 다뤄야겠다, 다른 한쪽에서는 관객의 몸을 다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서는 에너지가 발산되고 흩어지는 어떤 폭발적인 것을 해보고, 다른 한쪽에서는 캄(calm)하게 그걸 다 없애보고 싶었어요. 공간적 스케일과 시간적 스케일을 각각 다뤄보고 싶었죠. 사실 동굴이라는 것이 그 사이에서 나왔어요. 어느날 자다 깨서 동굴 이미지를 벽에 붙였어요. 피디님과 얘기하는 가운데 동굴이 떠올랐다고 말했는데, 피디님이 동굴, 객석, 구멍, 공동을 포함하는 것이 라틴어 카베아Cavea라고 하셨어요. 카베아가 케이브의 원형인데, 그렇다고 동굴같이 어떤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연상되는 것은 피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생각하게 된 게 복수형 카베에Caveae였어요. 복수형이어서 뭐뭐들, 구멍들, 떼 같을 것을 가리킬 수 있게 되었죠. 사실 제가 관심 있는 것은 명사적 이미지거나 동굴 그 자체는 아니었고, 그런 것들의 습성, 그런 것들의 동사적 움직임, 그런 것들의 운동성이었어요.”

– 그동안 안무 작업에서 제목 짓기가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김민관님은 황수현 안무가 작품 제목의 수행사적 성격을 지적하며, 제목 짓기가 안무의 기술에 속한다고 보았죠. 그런데 이번 <카베에>는 이전과는 결이 다른 제목처럼 보입니다.

“제가 제목부터 안무적으로 구조화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제목을 먼저 읽고 그 안에서 작업들이 시간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제목도 그 시간 안에 같이 포함시켜요. <검정감각>, <저장된 실제>,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같은 게 그렇게 만들어졌죠. 그런데 <카베에>가 이런 성격과 조금 다른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어요. 먼저 기존의 제목들이 실험적이거나 소규모 작업 같은 느낌이 있는데 그런 방식이 대극장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명사형 제목을 선호하지 않지만, 그때 피디님이 제목은 심플하고 빨리 읽히는 명사형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고요. 재밌는 건, 작품 제목을 1년 전에 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2023년 4월 공연인데, 프로세스 상 2022년 6월에 작품 제목을 결정해야 했죠. 보통 이게 어떻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작품 중간쯤에 제목이 나와야 하는데, 작품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못하는 상황에서 제목을 결정해야 했죠. 이런 여러 상황 속에서 기존 방식보다는 주변의 추천대로, 큰 극장과 잘 어울릴 만한 제목으로 가보자 싶었어요. <카베에>라는 제목이 주는 스케일이 있으니까요. 동시에 국립에 계신 피디님도 큰 극장과 잘 어울려서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분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면도 있어요.”

– 협력 프로세스에서 주고 받은 영향이네요. 

“기존에 했던 방식과 다르고 제가 혼자 다 하는 구조도 아니니까요. 그러면서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함께 조율해 가는가가 하나의 미션이기도 했어요.”

– 해오름극장에서 원래 있던 큰 관중석은 비워두고 무대 위에 객석을 마련했잖아요. <카베에>가 원형극장의 객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보면, 관객이 무대 위에 둥글게 앉아 원형극장을 형성함으로써 관객을 포함하는, 말 그대로 ‘원형극장 <카베에>’라는 공연이 성립될 수 있었겠어요.

“사실 그동안 모든 작업에서 관객의 위치를 고려하며 안무를 해 왔기 때문에 이번 객석 장치가 특별히 관객을 더 포함하는 구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워낙 큰 객석이 있는데 그것을 쓰지 않고 무대 위에 객석을 세팅하면서, 비어 있는 저기를 생각하게 하고는 싶었어요. 객석을 비움으로써 객석이라는 아이디어가 작품으로 더 많이 들어오게 되긴 했어요.”

무대 위 객석을 마련한 것이 미학적 이유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제가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기로 한 뒤, 몇 차례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극장 구조상 1층, 2층, 3층 좌석에 차등이 있어요. 3층에서는 너무 멀고 가파라서 잘 안 보이더라고요. 예전에 영국에서 라이온킹 보러 간 기억이 났어요. 돈이 없어서 맨 뒤쪽에 앉았는데 떨어질까봐 무서워서 공연 내용이 하나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앞에서는 거대한 기린이 객석 사이를 지나가는데 나는 지나가는 기린의 크기를 감각하기는 커녕 보이지도 않는거에요. 자리가 내 ‘돈 없음’을 자각시키는 거죠. 이런 대극장은 자본과 권력 구조와 직결되어 있으니까. 극장 구조상 객석에 따라 감각적 경험에 차등이 생기는 것이 계속 걸렸어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붙어있지 않았고요. 객석별로 차등이 아닌 차이를 줄까도 고민했지만, 그러려면 예산이 훨씬 더 많이 드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무대 위로 객석을 올리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어요. 많은 사람에게 보여준다고 이 큰 공간을 빌려 놓고 다 쓰지 않는 것이 저에게도 부담이었지만, 그 부담보다 가치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 베를린 필하모니 생각이 나네요. 이 극장은 어디에 앉더라도 무대와의 시각적 청각적 연결을 높이기 위해 입체적으로 설계됐어요. 한스 샤론 건축가가 강조하는 ‘공동성’ 개념이 반영된 건축물로, 분단 당시 서베를린에서 지어졌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주의적 이상이 가장 잘 구현된 공간으로 평가되기도 해요. 이 설계 역시 고대 원형극장의 복원이라는 의미와도 맞닿아 있어요.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다들 작업의 이해도가 높았던 것 같아요. 공동의 감각이라고 해 놓고 돈으로 좌석에 차등을 두는 것도 맞지 않고, 그렇다고 같은 돈을 내고 다른 층에 앉게 하는 것도 오히려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해줬어요. 무용 공연이 관객을 많이 모으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던 것 같고요. 나중에는 티켓이 모자른 상황이 되기도 했지만요”

– 많은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도 새로운 시도였을텐데요. 협업 과정은 실제로 어땠나요?

“좋았어요. 소규모 퍼포머와 진행할때에 비해 심리적 거리를 둘 수 있어 더 편한 부분도 있었고요. 어떤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낼 수 있을까가 공동의 과제였어요. 무용 공연은 드러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공동체를 위한 작업에서는 요구되는 능력이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기다려준다든지, 서포팅을 잘 해준다던지 하는. 보통은 이런 능력에 크게 주목하지 않지만, 서포팅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강조했어요. 옆에 있는 사람이 드러나도록 기다려주고 비켜주고 하는 게 하나의 능력이라는 것을요.”

– 저는 무대 위 다수의 몸들이라고 할때 반딧불이 같거나, 모래사막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하지만 몸들이 중첩된다는 건 동시에 기이한 느낌을 주기도 해요. 독일에서는 나치 역사 때문에 콜렉티브 개념이 부정적인 것처럼요. 누군가는 최근 한국 사회가 겪은 참사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황수현 안무가에게 다수의 몸이 갖는 상(像)은 어떤 건가요?

“축제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그 시작점이었어요. 저에게 많은 몸의 기억은 2002년 월드컵이에요. 한번도 보지 못한 열광과 미친듯한 에너지였죠. 당시에도 이게 또 일어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카베에>에서도 일시적으로나마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걸 경험한다면 이게 일상에서도 다른 종류의 긍정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업 도중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면서,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다수의 몸을 다루는 일이 망설여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모이는 행위를 금기시하거나 예술계나 사회가 경직되는 것도 문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여러 몸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보고 많은 분들이 생명체, 자연, 우주를 보는 것 같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중요한 것은 운동성을 읽는 거예요. 몸으로 주변을 감각해야 하는 거죠. 함께 있는 것이 옳다 그런게 아니라, 그러려고 하는 상태, 즉 리더와 서포터가 계속 변하는 상황 안에서 앞장서기도 하고 서포트하기도 하며 서로를 돌보는 것을 연습해 보고 감지해 보고 체험해 보는 게 중요해요.”

– 판데믹 이후, 무용계에서도 개인과 집단을 이항 개념으로 보던 시각을 재고하는 움직임들이 많았어요. 콜렉티브 바디와 개별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하셨는지도 궁금해요.

“ 흥미롭게 찾은 워딩이 ‘우리의 주체성’이에요. 개별 무용수들은 전체를 위해 자신을 지우거나 없애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해요. 나와 상대의 관계는 늘 변하니까요. 계속 조율하고 조정해야 하죠. 예를 들어 공연 중간부분에는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장면이 나와요. 이때 움직이는 속도의 기준이 몸의 타이밍에 있어요. 그 속도를 무용수들이 스스로 판단해야 해요. 동선은 있지만 무용수들 사이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아요. 선택은 무용수들의 몫이에요. 같이 일렬로 손을 대고 걷는 씬에서도 제가 준 룰은 ‘끊기지 말 것’이었어요. 더 중요한건 ‘절대 다른 사람의 손을 끌지 말 것’이었고요. 수행 과정에서 줄이 틀어지고 벌어져 끊기기도 하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요?’ 하고 묻더라고요. 저는 ‘선택하세요’라고 답했어요. 그게 인상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전체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고 매 순간 선택을 실천해야 해요. 공동의 책임이죠.”

– 새떼같기도 하고 물고기떼 같기도 한 군무, 스웜swarm의 원칙과 같네요. 고정된 리더나 정해진 순서가 없는 상태에서 서로가 조율하고 조정하며 끊임없이 새로움을 발생시키는 떼의 움직임을 스웜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에 획일화를 요구하는 강제는 없어요. 일자성과 다자성이 공존하죠. 중심부와 주변부가 계속 바뀌고 리더와 팔로우가 계속 바뀌며 공동이 책임을 지는 구조예요. 모두가 따를 수 있는 복잡하지 않은 룰이 주어지고 이에 공동으로 참여할때 개개인의 합 이상의 예측을 넘어서는 새로운 잠재가 발생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퍼포머들이 어떻게 구성됐는지도 궁금해요. 모두 젊고 이쁘고 무용수로 잘 훈련된 몸으로 보였어요. 다수의 퍼포머라고 했을때 좀 더 다양한 구성을 기대했거든요.  

“39명의 무용수를 오디션을 통해 구성했어요. 보통 20대 30대 초반으로 보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25살부터 41살까지 있었고 춤의 백그라운드도 다양했어요. 제가 이번 작업에서 퍼포머에게 가장 요구한 것은 조율하는 스킬이었어요. 사실 이건 고도의 테크닉이에요. 무용수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말을 듣고 자신을 조율하는 데 훈련이 되어 있거든요. 무대 전면에 서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무대를 책임지는 일에도 훈련되어 있고요. 결정적인 순간에 뒤로 빠지거나 숨지 않고, 밀어붙이는 에너지가 있지요. 저는 무용수의 이 조율하는 능력을 전문 영역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 개인의 기교를 요구하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무용수가 아닌 바디를 포함할때 오히려 전형에서 벗어나는 다른 퀼리티들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용수만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사실 저는 무용수에 대한 애정이 있어요. 제가 무용수 출신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다양성에 대한 논의 속에서 훈련 받은 무용수들의 몸이 때때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사실 무용수들의 위치는 사회적으로나 무용계 안에서나 매우 취약해요. 만약 제가 무용수로서 비전이 보였다면, 저도 안무를 하지 않고 계속 무용수로 남았을 거예요. 무용수들의 전문성이 인정받고 계속 무대 위에서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 무용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저는 춤을 늦게 시작했어요. 고2때였죠. 유연하지 않은 몸에 춤을 붙이는 게 큰 숙제였어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특이했던 게, 예고도 아닌데 무용 입시반이 있었어요.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을 배우다 고3때 전공으로 현대무용을 선택했죠. 나중에 어떤 의학 관련 책을 읽는데 거기에 ‘발레는 신체조건이 따라줘야 하지만 현대무용은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그 글을 보고 ‘어떻게 알았지?’ 하고 웃은적이 있어요.”

– 그래서 현대 무용을 선택했나요? (웃음)

“선생님은 한국무용을 권했지만 제가 고집을 부려서 현대무용을 전공으로 정했어요. 당시 새롭고 창작하는 걸 좋아하는 제 성격에 더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예전에 속해 있던 안애순 무용단에서나 현장에서 한국 춤을 많이 접하다 보니 한국 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한국춤은 배울 때는, 팔을 뻗더라도 선이 몸에서 뻗어나가 우주 한 바퀴를 돌아 연결되는 라운드를 그리라고 하는데요. 전에는 이런 모호하고 추상적인 설명이 어려웠는데 최근에는 한국무용에서 춤을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롭게 다가와요. 몸보다 춤 자체가강조되는 지점이 오히려 신선하달까요. 요즘 무용씬(Scene)을 보면 너무 몸만 있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 저는 몸에 대한 이해가 춤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단일하게 닫힌 개체가 아니라 구멍으로 가득하죠. 그 구멍으로 인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요. 에린 매닝은 <always more than one> 책에서 몸은 이미 하나 이상이고, 인간 너머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해요. 개체화 과정으로 보면 몸과 환경의 경계도 모호해지는거죠. 

“저는 ‘경계없음’보다 ‘경계있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어요. 예를 들어 커피콩과 물은 쉽게 분리할 수 있지만, 이 커피에 물을 붓는 순간 이걸 뭘로 볼 것인가가 흥미로운거죠. (앞에 남아있는 커피와 물을 가리키며) 이미 경계가 있는데 상황이나 맥락,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게 재밌어요. <우는 감각>, <아이 원트 투 크라이, 벗 아임 낫 새드(I want to cry, but I’m not sad)>작업도 그렇게 이뤄졌고요. 우리가 감정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사실은 감각, 기억, 습관 같은 것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신체의 물리적 반응이기도 하거든요. 그럼 이걸 감정이라고 볼 것인지, 감각으로 볼 것인지, 하는 그런 지점의 발생이 흥미로운 거죠. 이건 감각하는 느낌과 보여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퍼포머의 몸은 이미 경험하고 작동하고 있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계속해서 그 느낌과 보여줌 사이의 정교한 위치를 찾아가야 해요.”

– 그럼 폼(form)의 형성까지 간다는건가요?

“네. 형성까지 가요. 퍼포머가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드러내는 일은 중요해요.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 과정과 마찬가지죠. 어떤 느낌을 감지할때 사용되는 근육을 찾고, 그게 드러나도록 또 움직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에는 엉덩이를 이렇게 조여 올리면 감지하는 느낌이 생기거든요. (지금 소름 돋았어요, 하며 손으로 팔을 쓸어내린다) 예를 들어 슬플때 엉덩이를 이렇게 움직이는 동작을 만들었다고 쳐요. 그런데 나중에는 슬픔 없이 동작만 남을 때가 많아요. 그러면 관객은 무용수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고 슬픔을 볼 수도 없어요. 그럴때 저는 무용수에게 어느 타이밍에서는 그걸 보이게 해 주면 좋겠다고 말해요. 그래야 무용수도 소외되지 않고, 관객도 소외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경계있음을 명확히 하고 그걸 다시 들여다보거나, 재조합할때 새롭게 보여지는 것들에 흥미가 있다고 했다. 몸은 다 모호하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때는 정확하게 모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창작자로서, 안무가로서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요. 황수현 안무가가 갖는 창작자로서의 태도이거나 윤리일 수도 있고요.

“제가 무용작품을 만드는 거나 작가가 글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창작물을 내놓는다는 것은 누군가와 소통하는 구조 안에서 이뤄지는 행위니까요.”

– 오늘 대화해보니 엄청 프래그마틱(Pragmatic)하신 것 같아요.

“네.  작업 초기에 저는 예술가로 소질은 있는데 자질은 없나 하는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제 생각을 주장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의심이 많았고요.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고 표현하는 예술가들에게 매료되는 경우를 많이 봐 왔어요. 그런 걸 보면 나도 좀 바뀌어야 하나 싶다가도 막상 잘 안되더라고요. 결국 제 성격대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요. 수용하고 조율하고 때로는 의심하는 태도가 가진 힘이 있을 거라고요. 그래서인지 관객을 더 생각하게 되고, 주변과의 관계성도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안무가로 저의 위치는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위치가 아니라, 무대와 객석 그 사이에 위치해 있어요. 공연예술에서는 내 말을 표현하는 것 보다 현장에서 구현되는 현상이 더 중요해요. 작업 끝나고 보면 제가 처음에 생각해 놓은 건 20프로 정도만 남아있더라고요. 나머지는 결국 함께 한 사람들, 기관, 극장, 맥락, 상황, 환경이 만들어가는거죠. 하물며 날씨도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걸요.” 

– 베를린에서는 코로나 이후 봉인 해제되듯 전염되는 몸, 정동 속의 몸을 다룬 움직임들이 많았어요. 형식적인 면에서도 퍼포머가 무대를 옮겨다니는 경우는 물론이고, 관객들도 지정된 좌석에 앉히지 않고 동선을 풀어놓는 경우가 많았죠. 이번 <카베에> 공연에서도 이례적으로 객석의 위치를 무대 위로 올렸잖아요. 그런데 지정된 객석을 찾아가는 과정이나 동선이 너무 꽉 짜여 있어 아쉬웠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최근 극장의 수동성에 관한 글을 봤는데, 제약된 행위를 능동적으로 재해석하는 내용이었어요. 흔히 관객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능동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거죠. 오히려 모든게 다 열려 있는 상태보다 느리고 취약한 상태에서 더 많은 것을 감각할 수도 있어요. 제가 조율하는 몸이라고 표현했을때 그것은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요. 관객도 스스로 보는 걸 조율해야 하죠. 이번 작품에서 무대를 빙 둘러 세 줄로 경사지게 객석을 구성했는데요. 공연 중에 무용수들이 뛰면서 도는 장면이 있어요. 이때 맨 앞자리에서는 실제 바람이 느껴져요. 반면 무용수들이 뒤돌아서 아, 하고 소리 낼 때는 두번째 줄에 앉은 사람들에게 소리가 직접 닿고요. 세번째 줄에서는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지요. 제 작품의 특징이 정면성이 없다는 거예요. 작품 전체를 한 눈에 보여주는 구조가 아니죠. 이번 작업에서도 어쩔 수 없이 못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 나와요. 그 지점이 상상의 영역을 만들어 내는 거죠. 저는 모든게 열려 있다고 해서 무조건 긍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부정적으로 간주되는 것들을 어떻게 긍정적 의미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 더 관심이 있어요.”

– ‘왜 트레이닝된 댄서만 있나요?’  ‘관객의 동선이 너무 세팅된 거 아니에요?’ 같은 불편한 질문을 던질때마다 명확한 이유가 준비되어 있는게 너무 인상적이에요. 

“이미 생각해 봤으니까요. 관객으로 온 한 친구는 무용수가 바로 가까이 있어 그 움직임을 좇다보니 너무 많은 걸 놓치더래요. 그래서 이 공연은 이렇게 보는게 아니구나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시선을 조율했다고 하더라고요. 제 의도를 읽고 피드백을 주는 관객을 만나면 반갑죠.”  

– 스케일을 넓히고 난 뒤의 소회는 어떤가요?

“여러 면에서 많은 변화였죠. 보통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간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지 않아요. 그건 하나의 형식인거죠. 스케일을 키우고 나면 그 다음에는 다 줄여야지 하는 생각도 했었고요. 지금은 그 변화들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에요.”

– 바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죠?

“운이 좋게 바로 이어서 극장 쿼드 제작공연으로 <Zzz>를 하게 됐어요. 관객이 잠들도록 유도하는 작업인데, 잠에 대한 개념보다는 잠드는 과정, 현상, 방식을 더 고민하고 있어요. 이렇게 제작비 따로, 개런티 따로 지원하는 기관은 국내에 거의 없어요. 지금이 아마 제 작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타이밍일 거예요. 이렇게 상황이 좋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어요. 한국은 안무가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조가 아니어서, 이렇게 개런티를 받으며 창작할 기회를 계속 만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해요. 국가기관이니 형평성 문제도 있고요.” 

– 이번 벨기에 쿤스텐페스티벌(2023)은 어땠나요?

“국내 봄 페스티벌에도 영향을 준 축제라고 해서 현장의 분위기가 궁금했어요. 전체적으로 정체성을 다루는 작업도 많았는데, 정체성은 너무 중요한 주제죠. 다만 무대 위에 흑인이면 흑인, 퀴어면 퀴어, 그 몸을 내세우는 예술적 표현 방식이 너무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것은 아쉬웠어요. 정치와 담론이 앞에 있고 춤이 그걸 서포트하는 방식인 것 같아서요. 같은 주제여도 춤만이 할 수 있는 걸 드러내는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었어요.”

“국내 봄 페스티벌에도 영향을 준 축제라고 해서, 현장의 분위기가 궁금했어요. 전체적으로 정체성을 다루는 작업이 많았는데, 정체성은 물론 중요한 주제죠. 다만 무대 위에 흑인이면 흑인, 퀴어면 퀴어—그 ‘몸’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이 너무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점은 아쉬웠어요. 정치와 담론이 앞에 있고, 춤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조처럼 느껴졌거든요.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춤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을 보여주는 작품을 더 많이 만나고 싶었어요.”

– 해외에서 활동할 계획은 없으세요?

“저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달려들기보다는, 기회가 왔을때 그걸 잡는 편이에요. 이번 쿤스텐페스티벌에서도 옆에서 저보고 ‘유럽에서 좋아하는 걸 만들어’라고 농담처럼 말하더라고요. 아시안 여성으로 굳이 할 말이 없겠어요? 그렇지만 어떤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1-2년 정도 작업을 구상할 수 있는 레지던시 환경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음 10년은 뭘로 재밌게 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우선 재밌어야 해요.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나만 좋은 일은 재미가 없더라고요.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해요. 같이 좋기가 쉽지만은 않지만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찾고 있어요. 작업은 안 그래도 외로운 일인데… 물론 같이 할 때도 외로울 때가 있긴 하지만요. 그래도 나만 위한다면 집에 누워있지 안 했을 거 같아요.”

스스로 지금이 가장 주목받은 시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다시 십 년을 내다보고 만들어갈 세계를 기다리고 있다. 분명 재밌을거다. 바이센제 호숫가에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자리와 날짜를 옮겨가며 이어졌다. 내가 사는 집으로, 알바하는 갤러리로, 티어가르텐의 야외카페로, 비어가르텐으로… 드디어 녹취를 풀었어요, 연락하자 그때의 날씨, 색깔, 소리는 기억나는데 어떤 말들을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즐거웠다고, 그래서 또 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거면 됐다. 그러니까 이 말들은 진공 상태에서 나오지 않았다. 무성한 녹음, 달작한 꽃냄새, 새소리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배경음 같은 독일어, 눈송이처럼 날아다니는 꽃씨들, 오후의 햇살 같은 것들이 함께 있었다. 황수현 안무가가 베를린을 여행하는 사이, 나는 황수현 안무가를 여행했다. 그 사이에서 상호 침투했다. 숲 같은 공원을 걸어나와 동물원역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해가 지기 시작했다. 초록 녹음 아래로 오렌지빛 석양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잎파리로 빼곡한 나무 밑이 캄캄해지도록 하늘은 오랫동안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 기록이 누군가의 창작 과정에서 공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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