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과 함께 월경越境하기

코스트바러 알탁kostbarer Alltag 매거진 첫번째에 실린 글입니다.


인천에서 베를린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 마지막 식사는 조카와 함께였다. 메뉴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렇게 택한 멍게와 산낙지.

멍게를 입에 넣는 순간, 바다 내음이 밀려왔다. 이어 잘게 썬 산낙지를 접시에서 떼어내 기름장에 찍고, 상추 위에 올렸다. 그 위에 생마늘 조각까지 얹어 한입에 넣는다. 쫀득쫀득한 탄성과 함께 알싸한 마늘향이 톡 쏘며 입안 가득 퍼졌다. 아, 이 맛이지!야무지게 흡입하며“마늘 한 접시 더요!”외치려던 찰나,아차 싶어졌다.

몇 시간 뒤면 밀폐된 기내에15시간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이다.그 사이 체내에서 알코올과 섞이고 타액과 위액에 분해된 마늘냄새가 온몸의 구멍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할 것이다.한국 안에서는 자연스러운 체취가 국경을 넘는 순간,누군가의 코를 찌르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며 흠칫 놀라 도망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사실 이런 염려는 직접 겪은 것보다 전해 들은 이야기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가깝게는 같이 사는 몬드에게서.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다가, 성인이 되어 다시 독일로 돌아온 친구다. 함께 삼겹살을 먹던 어느 저녁 나는 한국에서처럼 파채, 쌈장, 생마늘을 가득 상에 올렸다. 그리고 한 주먹 쌈을 싸서 여러 차례 그에게 건넸다. 그런 다음날 출근한 몬드는 곤욕을 치뤄야 했다. 사무실 동료가 문을 열자마자 코를 쥐어가며 “너 도대체 어제 뭘 먹은거야?” 외쳤기 때문이다. 평소 마늘 한톨 없는 김치를 먹다 공연 시즌이 끝나면 미뤘던 마늘을 한껏 먹는다는 한국인 오페라 가수들의 이야기는 눈물겨울 정도다. 그날 이후 우리 집 식탁에는 생마늘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요리에 마늘을 듬뿍 넣는다. 마늘을 강판에 바로 갈아 쓰느라 엄지와 검지 손끝에는 항상 마늘 냄새가 베어있다. 결국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루마니아 작가 아글라야 페터라니는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에서 말한다. “외국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어느 나라에 있더라도 우리는 입으로 먹기 때문이다.”

몬드의 또 다른 에피소드를 더하자면, 어려서 자신을 돌보러 온 외할머니가 숲에서 고사리를 뜯어 말리고 삶다가 경찰이 출동한 일도 있단다. 주민 신고가 있었던 것. 지천에 널렸지만 이 아름다운 식물을 먹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못하는 독일 이웃들이 이 낯선 냄새를 역하게 느낀 것이다. 공동 묘지 냄새가 난다나. 역시나 냄새는 보안이 취약하다.

그래서 베를린에서 공연을 보러 갈 땐 목욕재계를 한다. 몸에 밴 된장, 마늘, 젓갈  냄새를 씻어내고 옷을 갈아 입는다. 하지만 이런 낭패같은 경험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무대 위로 소환하는 기획과 예술가들도 있다.

베를린에서 춤의 이주를 연구해온 안무가 임지애는, 파독간호사로 독일에 와 30년 넘도록 한국춤을 춰 온 ‘홈플러스 앙상블’과 함께 최근 퍼포먼스 <Like a River Runs Through Us>를 선보였다. 이 공연에서 임지애는 이들의 목소리와 몸짓을 통해 이주, 돌봄, 노동에 얽힌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동의 경험으로 엮어내며, 주변부에 머물던 이들의 삶의 지형을 무대 한가운데로 세운다. 재밌는 것은 이들이 이주 초기 겪은 어려움이 대부분 음식이야기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병실에서 환자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겪은 애로사항들, 장을 보거나 음식을 해 먹으면서 경험한 웃지 못할 해프닝들. 그 중 퍼포머 계숙은 말한다. “한국에서 온 간호사들과 공동숙소에서 지냈어요. 우리는 함께 요리하는 걸 좋아했지요. 어느날 오후 부엌에 있는데 화장품 같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에요. 복도 문을 열어 봤죠. 그곳에 수간호사가 한 손에 방향제 스프레이를 들고 서 있는 거에요. 저희는 몹시 기분이 상하고 모욕감을 느꼈죠. 동료 하나가 다음날 일부러 간장 끓인 냄비를 김이 나는 채로 계단 위에 올려놨어요.” 무대는 다른 감각의 존재를 드러내며 감각의 위계를 해체한다. 한 개인이 갖고 있던 수치의 기억이 동시에 이주의 서사로 발화되며 힘을 얻는다. 

극장 전체를 김치 냄새로 채운 공연도 있었다. 구자하 작가의 퍼포먼스 <하리보-김치>가 베를린 극장 소피엔잴레에서 열린 날이었다. 구자하는 무대에 포장마차를 설치하고 관객 일부를 무대 위로 초대해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내주었다. 퍼포먼스는 할머니가 싸준 김치를 들고 베를린 아파트에 도착하는 에피소드 영상과 함께 시작된다. 베란다에 놔둔 김치 봉지가 발효와 함께 부풀어 터지고, 김치국물이 흐르는 참사와 당혹감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실제 무대 위에서 김치통이 열린 순간에는 객석으로 쿰쿰한 냄새가 밀려오더니 금세 극장 전체가 김치 냄새로 가득해졌다. 이어서 김치전 부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로 전환되었다. 냄새 자체가 움직이는 행위자가 되어 무대를, 객석과 극장 전체를 점령하고 변형시켰다. 공연이 끝날 무렵, 관객들은 무대로 초대되어 포장마차에 마련된 미역냉채와 김치를 함께 나눴다. 사운드, 영상, 연극적 요소가 결합되고, 후각과 청각, 미각까지 아우른 감각의 종합예술이었다.

2025년 유럽 풍속도는 1970년대 말, 아니 불과 10년전과도 분명 다르다. 이곳 베를린도 케이팝과 넷플릭스의 열기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아시아마트를 가지 않아도 라면, 김치, 된장, 고추장을 동네 슈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류라는 예외적 현상일 뿐, 지금 독일은 그 어느때보다 이민자와 난민을 배척하는 극우정치가 극성이다. 낯선 감각들의 충돌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베를린에 돌아오자마자 마늘을 주제로 한 공연 소식을 접했다. 예술 프로젝트 Dissident Paths(불복종 경로)의 오프닝 프로그램인 야스민 알카이시의 <The Garlic Ensemble>이었다. 마늘앙상블이라니. 마늘 냄새를 풍기며 국경을 넘어온 나로선, “극우 정치가 우리의 위장까지 침투하는 이 시대에, 마늘을 무기삼아 비폭력의 도구로 변형시키자”는 문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방법으로서의 함께 걷기’라는 부제를 달은 Dissident Paths는 사운드, 시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베를린 각지를 걸으며 이벤트를 펼치는 연간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알렉산더 광장 옆 nGbK 예술기관으로 향한다. 집을 나서기 전, 콜라비 몇개를 썰어 마늘을 넣고 액젓, 고춧가루에 버무렸지만, 이번엔 목욕재계를 하지 않았다.

하얀 옷을 입은 야스민 알카이시가 맨발로 관객들 사이를 걸어나와 길게 놓인 테이블 앞에 섰다. 테이블 위에는 마늘 더미와 절구, 절구방망이, 그리고 여러 개의 볼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야스민은 마늘 껍질을 벗겨 절구에 넣고 찧기 시작했다. 찔그렁 찔그렁 쇠구슬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관객들에게 손을 씻고 오라고 했다. 돌아온 관객들은 작은 그룹을 이뤄 마늘 껍질을 벗기고 절구질을 했다. 야스민이 다가와 소금과 올리브오일을 더하고, 더 힘있게 움직일 것을 주문했다. 서로 다른 속도와 박자의 절구질 소리가 겹쳐지며, 일제히 울리는 종소리처럼 공명했다. 야스민은 마지막으로 그 위에 물을 더했다. 루마니아식 마늘소스 무이데이Mujdei가 완성됐다. 벽면 통창 너머 베를린에서 가장 높은 TV 타워와 붉은 시청이 내다보이는 가운데, 실내는 마늘이 으깨지고 뒤섞이는 소리와 냄새로 진동하고 있었다. 

한바탕 소동이 잦아든 뒤, 야스민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쪽이 아닌 곳, 동쪽 예술계가 아닌 곳에서는 마늘 냄새를 터부시하지만…” 그러면서 수북이 쌓인 마늘 껍질 사이에서 마늘 알맹이를 남김없이 찾아낸다. 그리고 청중에게 다가가 부적을 건네듯 마늘 한 톨씩을 손에 쥐어준다. “마늘은 천연 항생제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나쁜 기운을 물리쳐 줘요” 라고 말한다. 자기가 루마니아 사람이어서 하는 소리는 아니란다. 어디서 왔냐고 물을때마다 드라큘라 얘기하는 건 정말 지긋지긋하다며. 하지만 결국 자기는 루마니아 사람이란다. 할머니의 음식만큼은 자신과 분리될 수 없으니까. 나는 받아든 마늘을 잠바 주머니에 넣었다. 야스민이 말하는 동쪽(East)은 동양이 아니라 동유럽이다. 마늘냄새로 곤욕을 치르는 건 한국인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낯섬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에 앞서 어디를 기준으로 동쪽이고, 어떤 정상 범주로부터 낯선 것인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야스민은 할머니 레시피로 만든 샐러드을 객석으로 돌렸다. 관객들은 손끝으로 시큼하면서도 짭조름하게 절여진 콩줄기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그 사이 야스민은 테이블 위에 빵을 넉넉하게 준비하고 관객들이 직접 빻아 만든 마늘 소스를 찍어 먹도록 청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빵을 뜯어 무이데이에 적셨다. 신선하게 다져진 마늘 향이 입안 가득 번졌다. 오일과 어우러진 마늘즙에서는 깊고 부드러운 풍미가 흘렀다. 한 입 넣는 순간, 혀 위의 감각들이 깨어나듯 침이 돌고 식욕이 솟았다. 관객들은 좀처럼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식탁에 손을 뻗어가며, 감탄과 탐닉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극장은 비밀스러운 기쁨을 공유한 공모자들의 공동부엌이 되었다. 

야스민은 마늘 냄새를 노멀라이즈(normalize)하자고 말한다. 정상화하자고.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자고 말이다. 그녀는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관객들에게 직접 마늘 껍질을 벗기게 하고 그걸 빻게 하고 먹어보게 했다. 그 맛을 탐하게 하면서 능숙하게 욕망을 코레오그라피했다. 국력이나 인기에 힘입지 않고도 낯선 냄새, 낯선 감각, 낯선 존재들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내듯. 

입안 가득, 아니 위장 가득 생마늘 냄새를 품고 집으로 향한다. 알렉산더플라츠에서 흩어진 관객들을 따라 마늘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가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만원인 트램에 앉아 이번에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다. 주머니 속 마늘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한다. 빨리 들어가 오늘 맛본 무이데이를 만들어야겠다고. 

경계를 넘는 것들은 언제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낳는다. 몸을 따라 냄새도 맛도 기억도 함께 경계를 넘는다. 때때로 더 멀리 새어나가고 스며든다. 그것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때 우리의 세계는 분명 더 깊고 맛있고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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